Notice
Recent Posts
Recent Comments
Link
«   2025/08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Tags
more
Archives
Today
Total
관리 메뉴

S.S의 소설방

은둔자와 모기 본문

에세이 및 단편소설

은둔자와 모기

Samesun 2021. 10. 4. 02:45


부끄럽다고 해야 맞을지, 아니면 자신이 없다고 해야 맞을지, 혹은 그 둘 다일지. 눈 앞에서 연신 묘기를 부리며 허공을 핑글핑글 돌다가 곧 시야에서 사라지는 모기의 잔상을 눈으로 쫒으며 그는 상념에 빠졌다.

누구보다 간절하게 피를 원하지만 어떻게든 사람의 시선을 피하려고 안간힘을 쓰는 저 모기처럼 그 역시도 다른 이들의 눈길을 받는 것이 두려워 이토록 몸을 꽁꽁 숨기고 근신하면서 지내온 것이 아닌가 싶었다. 회사를 관두고 일전에 알고 지내던 모든 사람들과 연락을 끊은 후, 집 안에서만 두문불출한지 오늘 부로 반년째. 그는 예전부터 간절했던 백수 시절을 근근히 이어나가고 있었다. 정신없이 일에 쫒겨 살며 자조적인 말투가 습관이 되어버린 시절엔 이 모든걸 관두고 어디 외딴 섬이라도 가서 밤 바다의 검은 파도가 철썩이는 흔한 풍경 따위를 지켜보리라고 다짐했었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았다. 남아 있는 퇴직금과 저축해놓은 얼마 간의 돈, 단단히 물려 있는 주식 몇 주가 재산의 전부였고 당장 기본적인 생활을 유지하는데에도 빠듯했다. 차라리 열린 틈 사이로 몸을 비집고 들어가 어디로든 날아갈 수 있는 모기가 더 자유로워보일정도로 그는 서울 한 가운데 좁다란 방에 갇힌 수감자의 신세를 하고 있었다. 그를 잘 알지 못하는 남들의 눈엔 분명 불행해보이는 몰골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바닥이 훤히 드러난 술병처럼 인생이 텅 비어버렸다고 여기지 않았고, 아직도 스스로를 작은 공간 속에 유폐시켜버린 선택에 대해서 큰 후회를 갖지 않으려고 애썼다. 오히려 이 사방팔방 벽으로 막혀 있는 공간이 그에겐 아늑한 안식처로만 느껴졌다. 분명 예전보다 물질적으로는 궁핍해졌을지언정 그는 지금 상황이 더없이 안전하다고 느꼈다. 물론 그 안온함 뒤에 언젠가는 다시 대문 밖으로 나갈 날이 돌아올 수 밖에 없을 거라는 강렬한 불안감이 서려있었지만 말이다. 적어도 늦더위가 가시고 이 모기가 활동을 마치기 전까지는 그는 굴 안에서 상처를 회복하는 짐승처럼 숨죽이고 앉아서 오로지 그 자신 만을 다독일 수 있었다.

누구나 은둔하길 꿈꾸지만 정작 실행에 옮기지 못한다. 그런 점에서 보면 그는 꽤나 본인의 소망에 충실한 사람이었다. 그런 은둔의 나날 속에서 그는 자신의 몸동작이 눈에 띄게 느려지고 침을 삼키는 것 말고는 별다른 기능을 하지 않는 혀도 굳어서 이대로 있다간 밀랍인형처럼 변해버리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하곤 했다. 급속도로 사물화가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의사소통조차도 매우 극단적으로 제한된 이 곳에 아직도 모기가 찾아온다는 사실이 그에겐 자신의 피가 혈관 속에서 느리지만 멈추는 일 없이 흐르고 있으며 여전히 그가 살아 숨쉬고 있다는 걸 알게 해주었다.

또한 모기가 윙 하고 귓전을 스치는 소리는 그에게 청력이 기민하게 잘 작동하고 있음을 입증해주었으며, 매우 극적으로 도달하자마자 형체도 없이 사라지고 마는 유성들처럼 이따금씩 그의 살갛에 살짝 닿았다가 찰나의 흔적 만을 남기고 떠나는 모기 역시 그에게 전신 곳곳에 촉감을 느끼는 신경들이 잘 이어져있음을 알려주는 근거가 되었다. 결과적으로 그가 지속된 은둔의 과정 속에서 깨달은 것은 무언가 다른 생명체가 존재함으로써 그가 본인을 더 제대로 자각할 수 있게 된다는 점이었다. 그는 자신 역시 저 비행하는 유기체와 같이 생을 계속 연결해나갈 수 밖에 없음을 숙명적으로 받아들여야 했다.

저렇게 작고 위태로운 피조물 또한 생존을 위해서 은둔자를 노리고 피를 빨아먹기 위해 온갖 애를 쓰고 있는데 그 역시도 다시금 안식처를 가장한 둥지를 떠나서 소위 밥벌이를 하기 위한 사냥의 시간에 나서야 할 것이 분명했다. 비록 지금 당장의 회복이 더디고 앞으로 닥쳐올 한 겨울의 매서운 추위가 두려울지라도 그는 적어도 저 모기보다는 더 유리한 수명을 갖고 있었다. 이처럼 그에게 주어진 더 길고 거창한 여생은 비록 그것을 지속하는게 무척 나른하고 노곤할지라도 한 순간에 이를 쉽게 포기하는건 모기에게 있어서 부끄러운 행동이나 다름없었다.

비록 여전히 자신감이 생기기 힘든 몰골을 하고 있지만 매년 여름마다 다시 돌아올 모기처럼 그 역시도 그를 기다리는 소수의 사람들 곁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그만이 이룩할 수 있는 작지만 희소한 미래들이 그를 잠자코 기다리고 있었다. 온갖 비난과 혐오에 시달리기는커녕 꿋꿋이 사람들에게로 질주하는 모기처럼 그 역시 생각을 비우고 달려나갈 공간은 이 몇 평의 방을 빼고도 충분히 많았다. 모기에 너무 많이 물려서 감각이 조금 무던해진걸까. 그는 내면 한 켠에서 도사리고 있던 불안감이 잠잠해지는 것과 동시에 은둔의 계절이 저물어가고 있음을 느꼈다.

'에세이 및 단편소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선량한 방관자들  (0) 2021.10.06
푸른 밤, 내가 본 것은  (0) 2021.10.05
백신 휴가를 얻은 날  (0) 2021.10.02
귀갓길의 일식집  (1) 2021.10.02
웃음 · 돼지저금통 · 아버지  (1) 2021.1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