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의 소설방
단 하나의 질문 본문

당신의 호불호는 안녕하십니까. 진한 피로감이 묻어나는 눈으로 올려다본 지하철 역 광고판에는 혼탁한 시야로도 확연히 읽을 수 있을 정도로 큼직한 문구들이 박혀 있었다. 최근 트렌드에 맞게 세련된 스타일로 폰트가 정돈되어 있었는데 이는 나에게 역설적으로 미숙했던 대학 시절을 떠올리게 했다. 당시 스펙을 쌓기 위해 막무가내로 대기업들에서 주최하는 각종 공모전에 매진했던 시기가 있었다. 지하철이나 버스 정류장에 설치하기 위해 고안했던 목업 디자인에대한 감각은 예선의 문턱조차 넘지 못한 그때 이후로 큰 발전이 없었다. 맨 땅에 헤딩하면서 서투른 솜씨로 공모전에 제출할 자료들을 만들던 그 시절의 난 졸업을 앞두고 다가올 취업 준비에 대한 부담감 말고는 세상사에 큰 관심이 없었다. 아니 관심이 있었다한들 지극히 소극적인 수준에서의 의견 피력에 그쳤다. 내면에서 복잡하게 움직이는 감정들을 다스리는데에 온 정신을 소진하기에도 버거운 날들이었다.
아직 지하철이 도착하기까진 약간의 시간이 남아있었고 마땅히 시선을 달리 둘 데도 없었다. 다시 그때로 돌아가면 좀 더 노련하게 결과물을 만들 수 있을지 가벼운 상상에 잠기다 이윽고 메인 카피로 사용하고 있는 안녕하십니까라는 도발적인 문장에 주목하게 되었다. 마치 역 근처에서 갑자기 어깨를 붙잡고 도를 아시냐고 물어보는 정체불명의 낯선 이들을 보는 것 같은 문장. 대학에 다니던 때, 같은 문장으로 시작하는 대자보가 광장 곳곳에 붙을 정도로 한 시절을 뒤흔들었던 적이 있었으나 이젠 그 당시 저 문구가 어떤 파장을 일으켰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대체 언제 붙였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이른 아침부터 게시판을 가득 메우던 대자보들 앞에서 그 내용을 이해하려고 애쓰다가 하마터면 수업에 지각할뻔 했던 단편적인 장면들만이 머릿 속을 스칠 뿐이었다.
주된 관심을 받았던 대자보의 면면을 보면 붓펜인지 네임펜을 사용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커다란 글씨들을 큰 종이에 오타 없이 써내려가려면 적당히 공을 들여선 불가능한 작업일거라고 지레짐작하곤 했다. 많은 논의들이 있었음에도 긴 시간을 지나며 빠르게 소모되어 사라졌지만 그 대자보가 담고자 했던 메시지 중 한 가지만큼은 남아있었다. 나의 호불호와 더불어 세상은 그 뒤로 조금은 안녕해졌을까라고 물어본다면 거의 대부분이 과거와 크게 다르지 않은 답을 할 것이 분명했다. 물론 승강장에 걸려 있는 광고 문구는 좀 더 다채로운 제품들을 고객의 취향에 맞게 큐레이션해주는 서비스 플랫폼을 홍보하는 데에 초점을 맞춘 것일테지만, 질문의 의도를 막론하고 과연 세상은 언제쯤 자신있게 안녕하다고 외치는 사람들로 가득차게 될까. 어떤 미래에 봉착하더라도 누군가는 또 다시 같은 질문을 할 것이다. 안녕하다의 정의는 시대를 통틀어 단일한 것이 아니기 때문일지 모른다.
어쩌면 그렇게 꾸준히 해답을 찾기 위해 고민하는 건 매일같이 냇가에서 조약돌을 주워 수면을 항해 던져보는 것처럼 부질없는 행동이라 할지라도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다. 이러한 생각만큼은 나이를 한참 먹은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사람들은 구태의연하더라도 또 다른 누군갈 위해 끊임없이 질문을 하고 이에 대해 엉성한 답변이라도 하려고 해야 한다. 그런 질문들로 인해 잔잔한 물 위에 파문이 일어나고 더 나아가 하나둘씩 쌓인 돌이 모여 새로운 물의 흐름을 만들어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러한 돌던지기에 참여하기를 꺼리는 사람 중에 하나였음에도 불구하고, 대자보를 쓰고 붙이고 시대와 사회에 질문을 요구하는 그들의 행동을 지지하고 있다. 그게 지식인의 미덕이라고 거창하게 표현하지 않더라도 말이다. 심지어 그들 중 다수가 나와 생각이 현저하게 다르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이젠 대학을 졸업하고 평범한 직장인으로서 밥벌이에 목을 매고 살아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따금씩 속 안에서 끓어오르는 어떤 결기 같은 것이 느껴질 때가 있다. 왜 이렇게 이런 방식으로 업무를 해야만 하는지, 왜 아무도 합리적이지도 도덕적이지도 않은 사건들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지, 모두가 그저 잠자코 윗선에서 행하는 온갖 부조리에 암묵적인 동의를 보내고 있는건지, 너무도 궁금할때가 종종 있었다. 그러나 일개 직원인 나는 마음 속으로 끙끙거리며 질문을 삼키고 또 삼킬 뿐이었다. 영영 소화되지 않는 질문들이 담석처럼 뱃속에 한가득 쌓여가는지도 모르고. 그렇기에 난 더더욱 불확실한 앞날에 대한 불안 속에서도 과감하게 세상에 대화를 시도했던 그 시절의 불씨가 간절해지곤 하는 것이다.
좌석에 앉자마자 미동도 없이 혼절하다시피 잠에 빠지는 보통의 출근길과 다르게 난 물밀듯이 밀려드는 이러한 단상 탓에 되려 정신이 말똥해지는걸 느꼈다. 과거에서부터 날아온 질문에 난 여전히 쉽게 답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묵묵부답으로만 일관하며 살아가고 싶지만은 않았다. 대자보의 꾹꾹 눌러쓴듯한 글자를 한 자 한 자 속으로 삼킬듯이 읽어내려가던 내가 품었던 심장은 아직도 희미하게 약동하고 있을터였다. 어느덧 지하철이 도착했고, 난 조금은 다른 결심을 한채로 일어났다. 그리고 한시바삐 걸어가는 출근 인파 속에 합류했다. 단 하나의 정답으로 끝나지 않을 질문 하나를 되새기며. 부디 이 오래된 질문이 어디에서도 들리지 않는 날이 오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