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의 소설방
아는 고양이 본문

난 고양이에 대해 아는 바가 거의 없다. 한번도 키워본 적도 없고, 심지어 잠시 동안 맡아서 데리고 있었던 적도 없다. 고양이는 순전히 미지의 환상 동물과 별반 차이가 없었고, 오로지 미디어에서 보여지는 이미지 조각들로 짜맞춰 어렴풋한 인상을 구현할 뿐이었다. 톰과 제리에 나오는 멍청한 고양이, 제임스 본드와의 영원한 대결을 펼치고 있는 어둠 속 숙적의 품 안에서 가랑거리는 소리를 내는 흰색 고양이, 나쓰메 소세키의 유명한 저서에 나와서 세상을 속속들이 관찰하는 고양이, 기괴한 실사화로 악명을 떨쳤던 뮤지컬 영화의 고양이인간, 애드거 앨런포가 창조한 악몽의 대상인 검은 고양이 등등..
솔직히 말해 강아지가 고양이보다 개인적으로는 더 친숙한 동물이었고, 어딘가 눈동자가 날카로운 고양이의 시선을 정면에서 바라보는 것은 왠지 모를 불안감을 가져다주었다. 깊은 어둠 속에서 번쩍이는 불빛을 유일한 희망으로 착각하여 달려가다가 느닷없이 휘둘러진 날선 발톱에 얼굴을 긁히고 마는 그런 두려운 상상이 스물스물 올라오는 걸 막을 수 없었다. 그러한 상상 속에서 아릿한 피 냄새가 제일 먼저 코 끝을 스치는 것 외에는 고양이 냄새 또한 전혀 맡아본 적이 없었다. 민속 설화에서 보통 신묘한 동물로 나오는 구절들이 많은데 그 덕분인지 나에겐 나이를 먹고 해가 갈수록 고양이에 대한 아리송함만 커졌다. 그렇다고 딱히 제대로 그 동물에 대한 진면목을 파악하고 싶지도 않았고, 특히나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이는 데 게으른 나에게 고양이는 그저 어딘가 불편하고 범접하기 어려운 존재로 오랫동안 자리잡았다.
반면에 공원 어귀에서 산책을 하다가 우연히 마주친 강아지들만 보면 귀여워서 어쩔줄 몰라하는 나의 이런 편파적인 모습은 일부 애묘인들에게 반발을 불러일으킬 것이 분명했다. 따라서 이 글을 제외하고는 특정 동물에 대한 비호감을 전면에 나서서 표명한 적은 결코 없다. 하다못해 내 지인이 고양이를 집에서 키우고 있다면 나는 그 집에 방문하길 꺼리긴 하지만 그 이유를 고양이 때문이라고 명확하게 말하면서 주인의 기분을 상하게 만드는 무례를 저지르진 않았다. 흔한 공상과학소설의 설정처럼 알고보니 인간을 지배하면서 지구를 다스리는 종족이 고양이이고 우린 그저 주인을 섬기는 노예임에 불과하다는 내용이 사실로 밝혀지지 않는 이상, 내가 특별히 고양이를 영접할 기회는 살면서 흔치 않을 것이 분명했다. 그만큼이나 나에게 있어서 고양이는 신비로운 존재였다. 밤늦도록 일을 하다 퇴근하는 동안 어쩌다 마주치는 길고양이들은 나만 보면 음신하게 카랑거리는 냐옹 소리를 냈다. 목숨이 오직 한 개뿐인 하찮은 사람으로서 그들이 내지르는 울부짖음은 나로 하여금 저절로 고개를 숙여지게 만들었다. 고양이 한 마리가 내 뒤를 졸졸 따라오지 않는지 노심초사하며 서둘러 발걸음을 옮기는 내 모습이 어딘가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내 운명은 내가 얌전하게 평소와 다를 바 없는 모습으로 살길 원하지 않았다. 퇴근 시간을 몇 분 앞두고 갑작스럽게 떨어지는 무수한 보고 세례들처럼 내 인생은 내가 바라는 대로 흘러가지만은 않았다. 골목 귀퉁이에서 한시바삐 걸어가는 나를 지켜보기만 하던 고양이들이 이렇게 내 곁으로 오게 될 줄은 미처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나에게도 아는 고양이가 생겨버린 그 일은 불과 몇 달전에 일어난 것이었다. 내가 너무나도 사랑해 마지않는 그녀가 고양이를 돌보게 되었다는 소식이 전화선을 통해 들려올때 나는 멍청하게 침대 위에 누워서 내일까지 해야 할 업무에 대한 걱정을 간신히 다스리고 있었던 중이었다.
뭐라고?! 화들짝 놀랐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에게 나의 당혹감이 전해지지 않도록 간신히 목소리를 낮추어가며 나는 되물었지만 그녀에게 이미 내 속마음이 들켜버리고 말았다. 그녀는 피아노를 취미삼아 배우고 있었는데 하필이면 피아노 선생이 외국으로 나가 한동안 체류할 일이 생겨버리는 바람에 집에서 키우던 반려동물에 대한 처우가 곤란해졌고 평소에도 동물을 좋아하는 선한 품성을 갖고 있는 그녀가 그들을 도맡아버리게 된 것이 이 사태를 낳게 한 원인이었다. 나는 떨리는 심장을 부둥켜안고 침대에서 한동안 일어나지 못했다. 심지어 한 마리도 아닌 두 마리. 내가 감당해야 할 부담이 갑자기 두배로 늘어난 느낌이었다. 그렇다고 그녀의 저녁 초대를 거절할 명분은 없었다. 오붓하게 와인 한 병을 따고 달콤한 스파게티나 구운 새우를 먹는 로맨틱한 장면은 더 이상 그려지지 않았다. 고양이 두 마리가 나 대신 식탁 앞에 앉아서 꼬리를 흔들거리는 모습만이 자꾸만 떠올라 나는 머리가 지끈거렸다. 그녀에게 고양이는 그저 보살핌이 필요한 귀여운 생명체였고, 나에게 애정이 듬뿍 담긴 사진을 몇 장 찍어 보내주기까지 했다. 최대한 억지스러운 느낌이 나지 않게 반응을 해주었지만 나는 착잡함을 감추지 못했다. 그녀는 이번 기회에 내가 갖고 있는 고양이에 대한 잘못된 미신이 서려있는 뿌리 깊은 악감정을 떨쳐버릴 수 있을 거라고 확신했다.
살이 포동포동하게 올라있는 덩치 큰 녀석이 바닥에 누워서 정신없이 장난감에 앞 발을 들이밀고 버둥거리는 영상을 보내주었는데 귀여움을 강조한 듯 했으나 나에겐 그저 기괴하게 사지가 꺾인 털뭉치로 보였을 뿐이었다. 사진과 영상으로 그들을 접했던 적응 기간이 끝나고 드디어 액체와 고체의 범주를 넘나드는 특이한 생명체들을 직접 마주할 수 있는 약속의 날이 다가왔다. 나는 긴장감을 떨치기 위해 핸드폰 안에 저장해놓은 강아지 사진들을 틈틈히 열어보았다. 개와 고양이 사이에서 벌어진 위대한 전쟁에서 고양이들이 승리하는 불상사만 벌어지지 않길 바라면서 나는 묵묵히 그녀의 집 초인종을 눌렀다. 컹컹거리며 주인과 함께 달려나오는 개들의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사박거리며 눈 위를 걷는 듯한 조용한 발소리들이 들릴듯 말듯 닫힌 문 사이로 새어나왔다. 문이 열렸고 나는 전혀 낯선 세계에 도착한 이방인이 된 심정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마침 나와 고양이를 위한 요리를 마친 터였고 난 블루베리 케이크와 와인을 들면서 기선제압을 하려는 듯 힘차게 인사했다. 그리고 나를 경계하면서 주변을 맴돌고 있는 그들을 마주했다. 나에게 있어 아는 고양이들이 생기는 순간이었다. 털이 숭숭 빠져 있는 마르고 짙은 회색의 고양이 하나와 사료란 사료는 다 훔쳐먹었는지 살이 엄청나게 오른 푸짐한 흰색 고양이 하나가 소파에 주인처럼 앉아있었다. 이미 소파의 가죽은 그들의 발톱에 희생당해 너덜너덜해졌고, 갤러리를 방불케 할 만큼 온갖 수려한 그림의 액자들이 걸려 있는 벽은 일부 벽지가 피할 수 없는 습격을 받은 듯이 베어져있었다. 티없이 깨끗했던 바닥도 휘날리는 오색 빛깔의 털들로 가득했고, 그 모든 처참한 광경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그 어느때보다도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녀가 애정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는 건 케이크와 와인을 마치 누군가에게 뺏기지 않을 것처럼 소중하게 안고 있는 내가 아니라 위험한 영혼을 품고 있는 그들이었다. 저들이 너의 집을 망치러 왔다고 내가 아무리 타일러도 그녀는 인테리어 업자를 다시 부르고 말지 그들을 차디찬 길바닥으로 내쫒지 않을 것이란걸 그 즉시 깨달았다.
난 살랑거리며 변덕을 부리는 그들을 피해 식탁 앞에 앉아서 나의 그릇된 상상이 현실이 되는걸 서둘러 저지했다. 그녀는 이상하리만치 자신감이 넘쳤는데 내가 자신처럼 고양이를 좋아하게 될 것이란 기대를 실망시키게 될까봐 너무도 유감스러웠다. 정신없이 식사를 마치고 난 그녀가 소개시켜주는 고양이들과 대면할 수 있었다. 그들은 원래부터 가정에서 안락하게 키워진 혜택받은 개체들은 아니었다고 한다. 어렸을 적에 버려져서 길에서 떠돌고 다니던 걸 데리고 왔다는 불행한 사정이 있었다. 심지어 마른 녀석은 전주인에게 학대를 받은 듯한 흔적도 있었고, 그래서 더더욱 낯을 심하게 가려 내 주변으로 쉽게 다가오질 않았다. 반면에 뚱뚱한 녀석은 언제 처음 봤냐는 듯 이미 앉아있는 내 무릎위로 올라와 스스럼없이 얼굴을 들이밀었다. 살과 털로만 이루어진 것 같은 육중한 몸집이 그 무게로 나를 서서히 눌렀는데 어쩐지 싫지만은 않았다. 쉽게 바람에 날아가지 않을 정도로 묵직한 솜사탕을 품에 안고 있는 기분이었다. 생각보다.. 그들에 대한 첫인상만큼 나쁘지 않았다. 그들이 갖고 있는 안타까운 경험들 때문에 내가 좀 너그러워진 탓일까. 그녀는 환하게 웃으면서 너무도 쉽게 마음을 여는 내 성격을 자기는 오래전부터 이미 잘 알고 있었다면서 고양이를 안고 있는 나의 역사적인 순간을 사진으로 찍어주었다. 고양이는 내가 시원한 부분을 찾아서 긁어주자 너무도 좋아하면서 냥냥거리는 소리를 냈고 난 그 소리가 계속 듣고 싶어졌다. 이렇게 실제로 만나고 보니 보호 안경이나 방어구를 차지 않아도 될 정도로 고양이는 안전한 동물이었다. 난 이런 식이라면 몇 번을 더 봐도 괜찮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아직 마른 녀석과는 친해지지 않았지만 곧 가까운 사이가 될거란 낙관적인 생각에 잠길 정도였다. 가까워진다니. 배신당한 개들이 요란하게 짖어대는 소음이 귓가에 들리는 듯 했다.
그녀는 너무도 만족스러운 저녁이 된 것 같다며 환호했고 난 그녀가 기뻐하는 모습에 더욱 마음이 동해 최선을 다해 고양이와 놀아주었다. 결국 내 모든 것들은 그녀가 계획한 대로 흘러간다는 당연한 결론만을 내리고 나는 긴장과 불안에서 완전히 해방됨을 느꼈다. 섣부른 편견에서 비롯된 착각이 얼마나 나약하게 부서질 수 있는지 다시 한번 알게 되는 저녁이었다. 이렇게 하여 나에게도 아는 고양이들이 생기고 말았다. 나는 그 사실에 대해 전혀 불만이 없으며 평화로운 내 세계에 고양이들이 편입되었다는 걸 몸소 환영하는 바이다. 물론 아직까지 그들에 대한 불신이 완전히 사그러들진 않았으나 점차 나아질 것으로 기대한다. 그럼 이만 고양이들을 쓰다듬으러 가야하니 글을 마치도록 하겠다.
냥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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