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및 단편소설
웃음 · 돼지저금통 · 아버지
Samesun
2021. 10. 1. 21:34
넌 잘 할 수 있을 거야. 그냥 홀로 서기 연습한다고 생각하고 편하게 지내. 난 간다.
차장은 억지인지 진짜인지 알 수 없는 묘한 웃음소릴 내며, 언제부터 쌓였는지 모를 동전으로 가득 차서 묵직함이 느껴지는 돼지 저금통을 종이 백에 담아 넣었다. 찰랑거리는 소리가 짧게 끊기는 것으로 보아, 더 남아 있을 공간은 없어 보였다. 천천히 종이 백의 다른 짐들 사이로 자취를 감추는 저금통을 지켜보며 나는 예전의 내가 부서 이동을 통보 받은 당일, 신속하게 자리를 치웠던 기억이 떠올랐다. 필사적으로 감정을 감추기 위해 정신없이 서류철들을 가방에 쑤셔 넣던 그 때가.
그 때의 나와 현재의 차장이 다른 건 난 당시 맡았던 업무가 맞지 않아 쫒겨난 흔한 바보라는 것이고, 차장은 상무의 잦은 폭언과 희롱을 고발하다 쫒겨난 양심 있는 바보라는 점이다. 남들 귀에는 외계어로나 들릴 법한 폭탄 발언을 일삼던 바보.
그건 무거우실 텐데 천천히 가져가시죠. 어디 아예 떠나시는 것도 아닌데. 이미 서류들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는 저금통을 가리키며 내가 말했다. 그건 모르는 일이지. 이내 동전이 짤랑거리는 소리가 멈췄다. 애들 갖다 주면 잘 갖고 놀거야. 평상시 줄곧 늘어놓곤 했던 시시껄렁한 농담처럼, 그는 그렇게 실없이 인사를 마치고, 사무실을 나갔다. 몇 년 간 차곡차곡 축적되온 기억들을 한아름 저금통에 품은 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