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엽이 떨어지는 소리를 들으며

내 주변에서 나를 두고 짧게 스쳐지나가는 말들처럼 귀에 거슬리는 속삭임은 또 없을 것이다. 잠이 오지 않아서 가끔씩 찾아서 듣는 유투브의 ASMR과는 달리 그 발화의 목적이 전혀 선한 데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뒷조사하는 일을 업으로 삼고 있는 것도 아닌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나서서 상대에 대한 정보를 캐내고 공유하는 걸 행하고 심지어 즐기기까지 한다. 사박사박거리며 조용히 떨어지는 낙엽을 사무실 창문을 통해 보다가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보통 가을의 정취에 대해서 느끼는 편이라기 보단 이토록 주관적인 감상에 빠지는 것이 내가 요새 같은 환절기의 일반적인 풍경을 보는 동안 발생하는 흔한 일이었다. 그나마 일부 애호가들이 심미적으로 좋아하는 낙엽 더미들에 비해 훨씬 쓸모없는 한철 지난 이야깃거리들이 사무실 곳곳에 즐비하곤 했다. 쓰레기통을 걷어차면 그 안에 들어차있는 사람들의 말들이 한움큼씩 쏟아져나올 것이다. 물론 나 역시 온갖 조잡스러운 이야기들의 재생산 공정이 탈없이 돌아가게 하는 데 있어서 역할이 없지 않았다. 아무리 주변인들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누구도 루머 양산의 책임을 묻는 데서 자유롭지 않을 것이다.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만을 투영해놓고 일면 객관적이라고 착각하는 그런 말들을 내뱉는 것은 일상다반사였다. 무척이나 편협한 시각 안에서도 세상 모든 것들에 대해 평론할 수 있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나 역시 누군가를 비난하고 획책하고 평가하고 싶은 참을 수 없는 유혹에 시달리면서, 오늘도 입에 담을 필요가 전혀 없는 메세지들을 메신저 창 위에 띄우고 어딘가로 흘려보낸다. 스스로도 자각하지 못하는 사이에 너무 많은 이야기들이 키보드 타자 소리 뒤로 모습을 감추고 건물의 층과 층 사이를 넘나들어 빠른 속도로 전파된다. 늘상 바쁘게 돌아가는 이 곳 일과 중에서도 틈틈히 일어나는 크고 작은 사건들은 특별히 공식적인 문서에는 기록되지 않으나, 누군가의 기억에 불완전하게 틀어박혀서 그 스스로를 지켜낸다. 숙주를 죽일 정도로 치명적이진 않지만 서서히 손상을 가하는 바이러스처럼 여러 소문들이 우리가 쓰고 있는 전자기기와 그 사용자의 수명을 서서히 갉아먹는 느낌이다.
때론 그 순간에는 비교적 당위가 있다고 여겨졌던 말들도 이윽고 시간이 지나고 보면 큰 의미가 없는 것으로 판명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남는 것은 골치아픈 뒷수습에 시달리는 일뿐. 아무렇게나 쌓여 있다가, 심지어 사람들이 밝고 지나가서 군데군데가 짓이겨진 낙엽 더미들을 치우는 건 매우 고통스러운 일인 것처럼. 바닥에 눌러붙은 젖은 낙엽에 내 발자국 또한 진하게 남아있었다. 나는 차라리 랜선을 뽑아버리고 말 것을 후회하면서 늘 같은 자리에 비석처럼 놓여 있는 내 PC를 껐다. 소통에 대한 간절함이 잘못된 방식으로 표출되고 만 것이 내 부족한 발언들의 원인 중 하나였다. 답답한 일들에 대해 어디엔가 털어놓지 않으면 버틸 수 없는 모자란 인내심 또한 그 원인이었다.
곧이어 모니터의 화면이 검게 어두워지면서 완전한 침묵이 찾아왔고, 이유 모를 지끈거리는 두통이 조금은 가라앉았지만 조금의 불안감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무수한 타자와 마우스 소리들로 청각의 자유를 빼앗던 하루가 이제 잠시 동안 종결을 고했다. 스산하게 떨어지는 낙엽을 밟으며 귀가할 시간이다. 소란법석했던 하루가 내일은 조금 잠잠해지길 바라면서 난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