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및 단편소설

마지막 시험

Samesun 2021. 11. 7. 10:04


확실한 증거가 필요했다. 두 눈으로 식별가능하고 보기만 해도 단번에 이해가 되는 그런 증거. 단순히 교수에게 메일로 나의 사정을 설명하는 걸로는 부족했다. 이렇게 내가 고민을 하는 이유는 몇달간 혹사시킨 탓에 펜을 제대로 들 수 없을 정도로 완전히 망가져버린 손목에 있었다.  

전공 과목의 거의 모든 책을 그대로 빈 노트에 펜으로 필사하면서 공부를 하는 나의 잘못된 습관 탓에 손목이 너덜너덜해졌고 급하게 찾아간 병원에서는 염증이 심하게 터져서 수술을 권할 정도라고 진단했다. 심지어 더 이상 글을 쓰지 말 것을 권유하며 오른쪽 손목 사용을 금지해야 한다고 의사는 단호하게 말했다. 평생을 문제 없이 써온 신체의 한 부분이 이런 제약을 받게 되었다는 사실에 난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어떻게든 펜을 들어보려고 해도 종이 위에 잉크가 묻어나는 순간 전기가 흐르는 것 같은 아찔한 통증이 손목을 강타했다. 이를 악물고 버텨내기엔 적응할 수 없을 정도의 거센 고통이었다. 이러한 비극적인 몸 상태와는 별개로 대학 마지막 학기를 성공적으로 마치기 위해선 반드시 졸업 학점을 무사히 받는 것이 필요했고, 그러기 위해선 남아 있는 필기 시험에서 적어도 통과가 가능한 수준의 답안을 써내려가야만 했다.

심지어 해당 과목의 교수는 평소 언행부터에서 무척이나 깐깐한 성격이 묻어나오는 사람이었다. 항시 수강생들이 수업에 임하는 바른 자세를 먼저 강조했고, 단지 졸업 학점이 필요하다는 등의 개인적인 사정을 전혀 봐주지 않기로 유명했다. 하다못해 어떤 학생이 알아볼 수 없는 글씨체로 답안지에 이름을 썼다고 해서 빵점 처리를 해버린 일화도 전해졌다. 강의 도중에도 사회 이슈들에 대해서 거침없이 독설을 날리기로 유명했고 그 교수가 집필한 정치 관련 서적들은 몹시 단정적인 문장들로 가득했다. 과거 고위 공직자로도 발탁되어 정부 소속으로 실무를 했던 경력도 있던 터라 일반 학자 타입의 교수들과는 결이 조금 다른 사람이었는데 내가 보기엔 그저 본인의 경력을 너무나도 자랑하고 싶어하는 고집센 사람처럼 보였다. 인상부터 무척이나 완고하여 학과 사이트에 올라와 있는 프로필 사진만 보고서 수강을 철회하는 학생들도 더러 있었는데 난 어떤 자신감으로 이 수업을 들으러 왔는지 이제와선 짐작도 가지 않았다. 하필이면 마지막 학기에 왜 이토록 까다로운 과목을 선택했는지에 대한 후회도 잠시, 난 어서 빨리 대책을 마련해야 했다. 내가 생각한 방법은 다음과 같았다.

먼저 장문의 메일을 보내는 것으로 시작한다. 마치 상소문을 올리듯이 공손하고 엄중한 필체로 앞으로 교수가 마주하게 될 악필에 대한 구체적인 변론을 펼치는 것이다. 손목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나의 불찰과 그로 인해 민폐를 끼칠 수 밖에 없는 현실에 대한 깊은 사죄가 가득 담긴 내용이었다. 물론 교수의 권위적인 특성상 이러한 일개 수강생의 메일을 제대로 읽을지 알 수 없었지만 그래도 나쁘지 않은 시도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시험 답안지를 수족과 같은 대학원생들에게 맡기고 쳐다보지도 않을 공산도 컸다. 일종의 채점용 가이드라인만 던져주고 말이다. 하지만, 여러 부정적인 전망들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나의 존재감을 드러내서 일관된 변명을 보여주는 것이 이번 난관을 해결하는 데 필수적이란 확신이 있었다.

나는 심호흡을 몇 번 하고선 잘 움직이지도 않는 오른쪽 손목 대신 왼손 만을 이용해서 천천히 타자를 쳤다. 메일을 보내고 나자 무언가 가뿐한 마음이 들었지만, 수신확인이 늦어질수록 다시 조급해졌다. 저녁에 보내지 말고 아침에 일찍 보낼걸 그랬나 하는 애꿎은 시간 핑계를 대면서 난 저릿한 오른쪽 손목을 주물거렸다. 항상 미련하게 몸 혹은 정신에 무리가 가는 행동을 반복하다가 크게 다치거나 건강을 잃고 나서야 나의 잘못을 깨닫곤 했는데 이번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차마 수술까지 받을 용기는 나지 않았고, 적어도 반년 간은 갓 태어난 신생아를 다루는 것처럼 소중하고 안전하게 손을 보호해야 했다. 그나마 하루 이틀 필사하는 걸 관두고 나니 뻐근했던 손목이 조금은 부드러워졌지만 아직 제대로 쓰기엔 시기상조였다. 이제 보름도 채 남지 않은 기말고사에 어떻게든 한 장의 답안지를 써내려갈 수 있도록 회복시키는 것이 중요했다. 혹시라도 도움이 될지 모를 영양분을 충전하기 위해 입맛에 맞지도 않는 삼계탕을 먹고 있다가 난 교수가 메일을 읽었다는 표시를 확인했다.

이제 더 중요한 단계가 남아 있었다. 바로 교수 눈 앞에서 내 절박한 모습을 확실하게 드러내는 것. 보기만 해도 단번에 내 상태가 파악될 수 밖에 없는 명백한 증거. 나는 근처 약국으로 달려가 시커먼 의료용 손목보호대를 구입했고 천천히 오른손 위에 휘감아 장착했다. 단단하게 고정되어 있어서 주로 고통의 원인이 되는 엄지손가락이 전혀 움직이지 않을 정도였다. 나는 불편함을 느끼지 않을 때까지 적응하기 위해 밤낮 가리지 않고 보호대를 차고 다녔다. 살면서 기브스 한번 해본 적 없던 나에게 그것은 점차 맞춤형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익숙해졌다. 이따금씩 너무 숨막히다고 느껴지거나 혹은 샤워를 할때에 잠시 푸는 것 빼고는 거의 대부분의 일상을 마치 새로운 신체를 이식받은 것처럼 달고 살았다. 그리고 시험 날이 다가왔다. 난 평소보다 더 일찍, 무섭도록 낮게 가라앉아있는 흐린 하늘에서 비가 떨어질 것을 경계하며 (보호대가 젖어버리면 안되었기에) 강의실에 도착했다. 아직 대부분의 자리는 비어있었고, 난 서둘러 맨 앞 자리에 앉았다. 평소엔 지루하기 짝이 없는 교수의 목소리를 듣다보면 자연스레 졸음이 밀려오기 때문에 결코 앉지 않았던 자리였다. 그리고 천천히 내 육중한 오른손을 당당하게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시신경이 제대로 작동하기만 한다면 애써 고개를 돌리지 않고서야 누구라도 발견할 수 있는 위치였다.

이윽고 캔 커피를 홀짝거리는 샐쭉한 표정의 교수가 등장했을때부터 내 심장은 마구 쿵쿵거리며 울려댔다. 시험 날이라 그런지 평소보다 인상이 배로 냉정하고 차가워보였다. 뒤따라 들어오는 조교들은 수십번의 시뮬레이션을 거친 것처럼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교수는 지극히 딱딱하게 몇 가지 안내 사항을 말했는데 그 어느때보다도 가까이서 들어서 그런지 평소보다 더욱 날카롭게 느껴졌다. 다행히도 시험 문제는 예상했던 범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지만 상당히 많은 분량의 글씨를 적어내야 했다. 난 어설픈 사이보그가 된 것 같다는 상상을 하며 삐걱거리는 엄지손가락 보호대 사이에 펜을 꽂아넣었다. 글씨를 쓸때마다 알싸한 통증이 찾아왔지만 보호대 덕분인지 손목이 크게 움직이지 않아 적어도 몇십분 간은 참을만 했다. 난 식은 땀을 뻘뻘 흘리면서 한 자 한 자 답안을 적어내려갔다. 교수는 여기저기를 흘깃거리며 예의 엄중한 그 특유의 얼굴을 유지했다. 점차 손목의 통증이 심해지면서 내 미간은 점차 일그러졌고 콧바람으로 거센 소리를 내며 난 계속 퍼덕거렸다. 여길 보세요! 지금 당신에게 절절한 편지를 보냈던 학생이 바로 코 앞에 앉아서 갖은 애를 쓰고 있다구요!
손목이 덜덜 떨려왔고, 난 이 모든 상황이 내가 원하는 대로 잘 흘러가고 있는 지에 대해서 의구심을 품기 시작했다. 온 몸으로 시위를 하는 내 모습을 교수가 보고 있긴 한걸까? 내 메일을 보고 스팸 정도로 취급하진 않았을까? 애시당초 저 사람에게 누군가를 동정할 만한 영혼이라는 게 있긴 한 걸까? 나는 진통제를 더 먹지 않은 것을 후회하며 아득해지는 정신을 가다듬었다. 참을 수 없는 한계가 곧 임박한 것 같았다. 그렇게 얼마 간의 시간이 더 흘렀을까. 귀에서 삐 하는 경고음이 날 지경에 이를 즈음, 난 시계를 확인할겸 고개를 들어 정면을 바라보고는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분명 시험 시작땐 장승처럼 우두커니 서 있던 교수가 보이지 않았다.

아! 조교들이 이렇게 많이 따라들어온 이유를 난 그제서야 이해했다. 시험을 감독하는 역할을 전부 교수 혼자 맡을 필요는 없었고, 처음 몇 분만 모습을 드러내어 간단한 지시 사항만을 전달하고 상아탑 안으로 다시 자취를 감추는 교수들도 더러 있었는데 이 교수도 그런 사람들 중 하나였다. 그제서야 엉망진창으로 휘갈겨 써져 있는 내 답안지가 눈에 들어왔다. 복잡하다고 정평이 나있는 러시아어 필기체를 목도했을때보다 더 이해하기 어려운 글씨였다. 진이 완전히 빠져버려 난 더 이상 무언가를 적어낼 수도 없었다. 머릿 속에는 같은 생각만이 떠올랐다. 망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제 방법은 없다. 체념하고 있는 와중에도 수강생들은 하나둘씩 답안지를 제출하고 교실을 나갔다. 책가방의 지퍼를 여닫는 소리가 그제서야 들려왔다. 나는 무관중의 연극을 필사적으로 연기한 바보에 불과했다. 그래도 끝맺음을 내야 한다는 생각에 몇 문장을 어거지로 우겨넣고는 난 자리에서 일어났다. 교실 앞문 옆에 놓여 있는 쓰레기통 안에 버려진 캔 커피가 유독 눈에 띄었다.

건물 밖으로 나오자 땀이 식어가면서 뜨거운 열기가 가라앉았고, 난 덜렁거리는 불쌍한 손목을 다른 손으로 감싸쥐었다. 이따금씩 실제 현실과는 유리된 활자 속에 갇혀 있는 학문을 배운다는 인식이 들 정도로 순탄치만은 않았던 대학 생활이었지만 이렇게 마지막 졸업을 앞두고 큰 난관이 기다리고 있을지는 몰랐다. 어딘가 마음 한 쪽이 먹먹해졌다. 바닥에 휘날리는 낙엽을 밟으면서 한참을 걸어가다보니 문과대학과 정경학부 교수실들이 모여 있는 건물이 보였다. 외관에서부터 섣불리 접근하지 말 것 이라고 쓰여있는 듯 고고해보이는 건물이 마치 덩쿨로 뒤덮인 고성을 닮았다. 어쩐지 처연해보였는데 그건 순전히 내 심정이 반영된 주관적인 감상이었다. 저 외딴 성에 고립되지 못해서 고통받는 사람들도 역시 많았다. 이 곳을 일종의 정신적 수양을 하는 데에 몰두하는 종교적인 공간이라고 여길 때도 있었는데 굳게 닫혀 있는 문 사이로 인기척은 여전히 느껴지지 않았다. 교수들은 학기의 끝을 맞이할 준비를 모두 마치고 수강생 명단을 벌써 파쇄기에 갈아넣었을까. 어디에도 기억되지 않을 나의 이름이 조각난 종이더미 사이로 이미 자취를 감추었을지 모른다. 유일하게 파쇄되지 않고 보존된 것이 있다면 그들의 강의 교안인데 이는 다음 학기에도 별반 차이가 없을 것이다. 수업 교재로 사용한다고 하지만 정작 강의 중엔 존재감조차 희미한 무거운 벽돌 같은 책들을 등에 이고 다니며 보냈던 지난 모든 세월을 통틀어 전공 강의 내용은 한두줄 이상 바뀐 것이 없었다. 외계에서 떨어진 기이한 기생 식물을 표현해놓은 것 같은 학술적인 단어들로 가득찬 현학적이고 복잡한 책이 두어 권 추가로 출판되었을 뿐이다. 그 와중에 사회는 매 시절마다 그랬듯이 여러 국면을 맞이했고, 중세 고딕 양식의 수도원에나 어울릴법한 무시무시한 침묵 속에서 구도자들은 저작에만 온 힘을 쏟았다. 사회를 다르게 부르는 표어들만이 가끔씩 유행어처럼 열린 창을 타고 떠돌아다녔다. 어디에도 기록되지 않을 그들만의 여흥이었다. 출입을 통제하는 것도 아닌데 하나뿐인 철문은 또 어찌나 두꺼웠는지 열고 닫기가 마치 고대 신화에 나오는 시험의 문처럼 막막해보였다. 오늘따라 그 내부가 몹시 궁금하면서 또 그렇다고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는 건물을 지나면서 난 지긋지긋한 보호대를 풀어 가방에 넣었다. 자유를 되찾은 손목에서부터 퍼지는 시원한 쾌감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앞일은 여전히 불분명했지만 그래도 마음 만큼은 무척이나 후련했다. 휴학 한번 하지 않고 정신없이 바쁘게 보내온 대학시절이 무사히 마침표를 맺길 바랄 뿐이었다. 여태까지 달고 다녔던 짐짝을 털어내는 기분마저 들었다. 난 걸음을 멈추지 않았고, 가끔씩 나의 생각과 거리가 먼 내용의 전공 도서와 강의 내용을 오로지 학점을 얻기 위해 억지로 받아쓰고 또 받아썼던 독서실이 있는 중앙 광장에 도달했다. 아직 마지막 시험이 좀 더 남아 있는 학생들이 분주하게 광장 안을 돌아다녔다. 만에 하나라도 오늘의 어설픈 작전이 성공을 거둔다면 나는 다신 이 곳으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매일 아침 강의실보다 더 먼저 자리를 맡기 위해 달려왔던 독서실 키오스크에게 작별 인사를 건넸다. 부시럭거리며 책과 필기구를 책상 위에 꺼내는 소리, 낡은 공기청정기 탓에 끊이지 않던 기침 소리, 바닥에 떨어져서 눈치없이 반대편 좌석까지 구르던 연필 소리, 대충 끼니를 때웠는데도 요란하게 꼬르륵거리던 뱃소리 등은 오랜 기간 동안 내 귀에 들리는 세계의 대부분을 차지했지만 대학 정문을 벗어나자마자 금방 잊혀지고 말았다. 그 후에 내가 어떻게 되었냐고? 놀랍게도 해당 시험은 우수한 학점으로 통과되었고, 난 무사히 졸업까지 골인할 수 있었다. 교수의 마음을 돌리는 데에 절절한 사연을 담은 메일이 유효했는지, 아니면 부상 투혼을 펼치면서 시험을 치른 것이 유효했는지, 그것도 아니면 악필을 넘어선 명답안을 작성한건지, 대체 무엇이 가장 큰 요인으로 작용했는지는 알 수 없다. 어찌되었건 나에게 있어서 더할 나위 없는 엔딩이었기에. 교수가 인정이 전혀 없을 정도로 꼿꼿하고 고지식하다고 여겼던 것도 어쩌면 내 편견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역시 학점을 잘 주는 교수가 나한텐 최고의 명교수라는 뻔하디 뻔한 현실적인 격언을 되새기며 깊이 감명 받은 내가 해당 과목 평가에 별점 만점을 남기면서 요란스러운 학기가 끝을 맞이했다. 물론 아픈 손목은 바로 회복되지 않았고, 그동안 수없이 써내려간 전공 책의 문장들이 어느샌가 머릿 속에서 휘발되어 날아갈때쯤 조금씩 다시 제 기능을 되찾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