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따스한 곳에 몸을 눕힐 수 있기까지

모두가 퇴근하고도 남았을 시간, 여전히 애쓰는 사람의 모습은 시선을 빼앗는다. 혼자 마스크를 쓰고 주방에서 무언가를 다듬는데 집중하고 있는 주인이 가게 유리창을 통해 보였다.
평소엔 쉽게 지나쳐간 가게가 오늘따라 눈에 들어왔다. 이 곳은 아들의 성을 딴 이름의 돈가스 집을 운영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메뉴는 특별하지 않다. 어디서나 흔하게 볼 수 있는 일식 느낌이 살짝 가미된 돈가스와 우동 정식이 가판대에 그려져 있다. 천천히 가게 외관을 두리번대며 살피다가 나는 허기를 느꼈다. 평소의 저녁식사 시간보다 많이 늦은 탓인지 가게 안에는 분주하게 정리를 하는 주인 말고는 아무 사람도 없다. 하다못해 알바도 없는 걸로 보아 혼자서 요리와 서빙 모두 도맡아하는 듯 했다. 금요일의 퇴근길에는 왠지 마음이 여유로워서 그런지 몰라도 평소에 가지 않던 곳도 방문하게 된다. 오로지 주말을 지척에 앞둔 지금 같은 밤에만 작동하는 불가해한 힘이 있다. 온종일 정신없이 격무에 시달리느라 점심으로 간단히 죽을 먹은 것 말고는 간식 한번 집어먹지 않았다. 그래서 더욱 유난스럽게 울려대는 꼬르륵 소리는 너무도 자연스러웠다. 텅 빈 가게와 그럴듯해보이는 돈가스 메뉴들을 보는 순간, 빠른 귀가에 대한 간절함은 과거의 영역이 되어버렸다.
나는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짤랑거리는 종소리로 방문객의 존재를 알렸다. 주인은 오늘의 마지막 홀 손님이 될 나를 보더니 밝게 인사했다. 아직 식사가 나오지도 않았지만, 환한 목소리 탓인지 가게에 대한 인상이 좋아졌다. 내부는 비교적 깔끔하고 많지 않은 수의 테이블위엔 빨간색 수저통이 하나씩 올려져있다. 난 이미 마음 속으로 결정한 메뉴를 말하고 서둘러 자리에 앉았다. 네이버에 상호명을 검색해도 리뷰가 거의 뜨지 않는 것이 개업한지 얼마 안 된 모양이었다. 스산한 바깥과 다르게 가게 내부는 한낮의 온기가 남아있었는지 포근했다. 난 안경을 잠시 벗어두고 온종일 노동에 시달렸을 눈을 잠시 감았다. 눈꺼풀 사이로 잡히는 주름들 하나하나를 느낄 수 있었다. 오늘따라 피로가 덕지덕지 매달려서 쉬이 펴지지 않을 것처럼 깊게 파인 주름들이었다. 호흡이 조금 진정되자, 난 예민하게 후각을 자극하는 선명한 음식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군침이 저절로 흘러내릴 정도로 강한 식욕을 유발하는 맛있는 냄새였다. 이윽고 눈 앞에 차려진 돈가스와 우동 정식은 비록 그 조합 자체는 색다른것이 없었지만 꽤나 정성들여 만든 티가 났다. 하루 일과 중 가장 만족스러운 순간을 꼽으라면 이렇게 잘 차려진 식사로 메마른 속을 달래는 지금이다. 사무실에서의 하루가 고되면 고될수록, 스스로 무가치하다고 여길 정도로 기계적인 일들을 반복하면 반복할수록, 이렇게 피로를 달래줄 저녁 식사가 주는 감동은 컸다.
주인은 구슬땀을 헝겊으로 닦아내며 마지막 손님을 살펴보았고, 난 기쁘기 그지 없는 표정을 하고 첫 술을 떴다. 그 역시도 새벽 장에 나가서 식재료를 사오고, 아침은 간단하게 전날의 남은 음식으로 해결하고 사온 재료들을 다듬고 오픈을 준비하는데 보냈을 것이고, 틈틈히 가게 안의 먼지를 말끔하게 닦아내며 손님을 맞이하고 배달 주문을 처리하며 나의 하루에 못지 않은 바쁜 일과를 보냈을 것이다. 구태여 눈을 감지 않아도 주인이 감당했을 일련의 노동을 상상 속에서 떠올릴 수 있었다. 누구나 삶을 이어나가기 위해서 열심히 하루를 보낸다는 뻔한 말이 탁월한 진리처럼 새삼스레 여겨지는 순간이다. 다만 이 곳의 주인이 하는 일이 나에 비해 조금 더 특별하다고 여겨졌는데 그건 적어도 나와 같은 사람을 한명이라도 더 기분좋게 만들어주는 일이라는 이유였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돈가스를 흡입하다보니 온종일 나를 괴롭혀온 복잡한 생각들이 감속하는 물살을 타고 있는 것처럼 서서히 잦아지다가 이윽고 멈췄다. 그리고 오로지 음식이 입으로 들어가 잘게 씹혀져 목을 타고 몸 더 깊숙이 들어가 소화되는 과정에만 몰두하게 되었다. 허겁지겁 다음 차례가 될 음식을 서둘러 수저 안에 채우고 정신없이 입을 오물거렸다. 동행인이 있었다면 체할 수도 있다며 말릴 정도로 나는 빠르게 테이블 위를 비워나갔다. 마감 준비를 하고 있는 주인은 그런 나의 모습에 아랑곳않고 주방 안을 정리했다. 그는 내가 이 식사를 마치고 나서도, 가게 안을 환하게 밝히던 전등의 빛이 꺼지고 나서도, 마무리 정리를 하기 위해 남아 있을 것이 분명했다. 그에게는 여러 일들로 꽉 차 있는 하루의 농도가 얼마나 짙게 느껴질까. 내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면 난 왠지 모르게 숙연해진다. 그가 지친 몸을 이끌고 달콤한 수면만을 희구할 수 있는 집으로 돌아가서 잠자리에 누울 수 있기까지 얼마나 많은 손님들을 위해서 묵묵히 하루를 버텼을지를 생각하면 종일 날카롭게 벼려놓았던 내 마음이 어딘가 살짝 몽글해지는 기분이다.
다 먹은 접시와 수저를 갈무리하고 있는 나에게 그는 피로감이 조금 묻어나지만 밝은 목소리로 음식이 어땠었냐고 물었다. 난 순간 어떻게 대답을 해야 그가 더 기뻐할지를 고민했다. 나의 머뭇거림이 맛 평가에 대한 망설임이라고 느껴지지 않길 바라면서 서둘러 정말 좋았다고 답했다. 주인은 손님 입맛에 맞으신 것 같다며 다행이라고 웃었다. 그도 그럴것이 밑반찬이 담겨 있던 그릇들까지 이미 바닥이 드러날 정도로 내가 부지런하게도 싹싹 긁어먹었던 것이다. 카드를 꺼내서 결재를 하는 순간에도 난 입 안에서 더 나오지 못한 말들이 웅웅거리는 걸 느꼈다. 뭔가 그럴듯한 다음 대화가 쉽게 떠오르지 않았다.
난 문을 열고 배웅까지 해주는 주인을 향해 머쓱해하면서 가볍게 목례를 건넸다. 이내 문이 닫히고 짤랑이는 소리가 점점 멀어졌고, 난 선선하게 불어오는 밤 바람에 후더분해진 몸을 맡겼다. 그에게도 오늘은 만족스러운 하루가 되었을까? 조금이라도 더 빨리 음식을 먹고 자리를 비우거나 포장 주문을 할걸 그랬나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지금이라도 그가 가장 편히 쉴 수 있는 곳으로 얼른 돌아갈 수 있길 바랄 뿐이었다. 난 한결 풍성해진 마음으로 저벅저벅 걸어가다 문득 뒤를 돌아보았다. 어느샌가 조명이 내려간 가게 간판이 희미하게 보였다. 다시 걸음을 옮기기 직전, 난 그제서야 미처 꺼내지 못한 말을 조용히 읊조렸다. 다시 또 올게요. 고마워요. 라고.